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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학주 국토교통부 건축분쟁전문위원회 사무국장/건축분쟁 해소 위한 ‘입증책임 전환’
  • 편집부
  • 등록 2022-12-13 13:02:55
  • 수정 2023-06-29 14: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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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해 사실 주장측서 ‘진실 증명자료’ 내놓는 것이 ‘정답’”
  • 가해자가 사실을 입증 못하면 ‘책임’
  • 피해자에 인과관계 증명요구는 무리
  • 건설사 분쟁 대비해 관련자료 ‘만전’
  • 관련법규 촘촘…분쟁조정 사례 많아


 


우리는 삶을 살면서 이런저런 분쟁을 겪게 된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분쟁이 없는 삶을 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쟁이 전혀 없는 일상을 바라기보다는 불가피하게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이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존 건축물 인근에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축분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건축분쟁이 발생하면 당사자들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내세우며 권리를 주장한다. 문제는 이렇게 내세우는 사실이 반드시 실체적 진실은 아니라는데 있다. 당사자들이 사실이라고 내세우는 내용이 실체에 부합하는 진실인지가 명확히 증명되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될까? 정답은 “사실을 내세우는 측에서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할 자료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책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분쟁 또는 소송에서 입증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새로운 건축물 공사로 인해 인근에 있던 본인 소유의 건물에 금이 가는 등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A는 권리의 발생 요건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반면 피해자 A의 권리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맞서야 하는 B는 자신에게 유리한 반대 규정의 요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실을 증명할 책임이 있다. 이 경우 통상적인 ‘입증책임’은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A에게 있다. 하지만 권리를 침해당한 A가 입증책임을 지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이때는 권리를 침해한 B에게 입증책임을 지게 하는데, 이를 ‘입증책임의 전환’이라고 한다.


 


‘입증책임의 전환’은 오염물질인 폐수 배출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나온 대법원 판례를 통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법원은 폐수 배출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폐수와 피해의 인과관계에 대한 엄밀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았다.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울 경우 공해 피해에 대한 사법적 구제를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인과관계를 증명하는데 필요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고 법적 절차에도 익숙하지 않을 가능성 또한 높다. 이러한 피해자에게 입증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의 요지이다. 반면 폐수를 배출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손해를 끼친 가해자인 기업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인과관계를 조사하기가 훨씬 더 용이하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대법원은 “가해자인 기업이 배출한 폐수가 해롭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폐수 배출로 인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건축분쟁은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건축 관계자와 인근 주민 간의 분쟁이다. 분쟁의 유형은 해체·굴착공사 및 공사 진행에 따른 기존 건축물의 균열, 누수, 기울어짐, 마감재 손상 등 다양하다. 인근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기존 건물의 소유주는 일조, 조망, 소음, 분진, 사생활 침해 등과 같은 피해도 자주 겪게 된다. 여기에 더해 영업 손실,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한 보상을 함께 청구하는 경우도 늘어나면서 건축분쟁은 갈수록 복합적이고 다양화 하는 추세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건축분쟁에서 ‘입증책임의 전환’이 상당한 정도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법규가 촘촘해지고 건축분쟁과 관련한 조정사례도 쌓여가면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 건설회사는 분쟁에 대비하여 인근 건축물에 대한 사전·사후 조사, 공사 진행 중 주변 지반 및 인근 건축물에 대한 계측관리 등을 수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를 통해 건설회사는 인근 주민과의 분쟁 시 지반조사, 흙막이 가시설에 대한 계측관리, 설계도서, 공사일지 등 공사 수행을 위한 각종 자료를 근거로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다.


 


반면 피해를 입은 기존 건축물의 소유자나 거주자는 건축과 관련한 비전문가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새로 진행되는 공사와 자신이 입은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건축분쟁과 관련한 피해자의 입증책임은 전문적인 내용이 아니라  피해 발생 전후의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하도록 완화되어 있다. 따라서 인근의 건축공사로 피해가 우려되면 건설회사에 사전·사후조사를 요구할 수 있고 관련 조사 시 입회 확인과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다.


 


실제로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는 건설회사에 요구했던 사항, 건축 인·허가기관에 제기했던 민원 내용, 일조 침해 현황, 영업 손실이나 정신적 피해 관련 증빙 등 객관적인 자료만으로도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공사를 진행하는 건축 관계자는 인근 주민과의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환경 등 공사 관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공사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건축물에 대한 사전·사후조사 및 계측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건축분쟁 발생 시 이처럼 당사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사실에 근거하여 합리적이고 적극적으로 입증함으로써 건축분쟁조정 제도가 생활 속에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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