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 날이면 시원한 계곡이 떠오른다.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을 만큼 시원한 계곡과 싱그러운 숲이 간절해진다. 한여름 무주구천동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덕유산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주봉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해발 1300m 내외의 높고 높은 능선이 무려 30㎞ 가까이 뻗어 있다. 무주구천동 33경의 넉넉한 비경을 빚어 놓은 곳이다. 한때는 오지의 대명사로 불렸던 무주구천동은 해발 1614m의 향적봉에서 나제통문까지 이어지는 36㎞의 계곡을 말한다.
구천동 어사길은 무주구천동 33경 가운데 16경인 인월담부터 32경인 백련사에 이르는 구간이다. 33경 중 핵심 비경이 죄다 들어있다. 2016년 안심대까지 3.3㎞ 구간의 복원을 마쳤고, 남아 있는 1.7㎞도 현재 복원 사업이 완료되어 올여름부터는 백련사까지 구천동 어사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구천동 탐방지원센터에서 백련사를 거쳐 향적봉으로 오르는 기존 탐방로가 계곡 왼쪽으로 나 있고, 계곡 오른쪽으로 난 길이 구천동 어사길이다.
기존 탐방로가 임도에 가깝다면 구천동 어사길은 자연 그대로의 숲길, 계곡길로 남아있다. 원래 덕유마을이 형성되기 전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왕래하던 길이다. 한 사람 겨우 지나가는 오솔길과 작은 돌계단을 그대로 살려 훼손을 최소화했다. 원시림의 숲과 청정 계곡을 옛 모습 그대로 누리는 것이 구천동 어사길의 매력이다.
이 길에는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1732년 조선 영조 시대 별건 어사였던 박문수는 전라도 지역의 기근을 살펴보라는 어명을 받고 무주구천동에 하룻밤 머물게 되었다. 쉴 곳을 찾아 헤매다가 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주민을 괴롭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가 남의 부인을 빼앗아 내일 혼례를 한다는 소식을 접한 어사 박문수는 혼례식장을 찾아 천씨를 관으로 압송하고 법으로 심판한다. 그날 고을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지나간 길이 지금의 구천동 어사길이다.
무주구천동 야영장 매표소를 지나 대략 200미터 정도 걸어가면 월하탄이 나온다. 거기서 100미터 오르면 구천동 어사길 입구가 보인다. 입구로 발을 내딛는 순간 딴 세상으로 변한다. 머리 위로 무성한 초록세상은 톡 건드리기만 하면 손에 초록물이 들 것만 같다. 몇 걸음 뒤 나무 덱이 끝나자 계곡이 바짝 다가와 물소리를 우렁차게 들려준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더위가 순식간에 달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