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 '5관왕' 기(記)
2003년 다소 늦은 나이에 「수자원개발」 기술사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다. 당시 주요 일간지에 ‘환갑 앞둔 나이에 기술사 5관왕’이라는 제목으로 필자 얘기가 소개되어 가슴이 뿌듯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 기술사는 1979년에 취득한 「항만 및 해안」 기술사였다. 대학에서 배울 때 가장 어렵다고 느낀 것이 '파도 이론'이어서 호기심으로 항만분야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UNDP자금으로 1년간 ‘네덜란드 국제 수공학 과정’을 거칠 때 해안공학 분야를 선택하였고 그 후 토목사무관 시절 대부분을 항만분야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항만 및 해안」 기술사를 먼저 취득하게 된 것이다.
1980년 서기관 승진 후 1981년에 「토목시공」 기술사, 1983년에 「토질 및 기초」 기술사를 취득하였는데, 네덜란드에 유학 갈 때 소속이 국립건설시험소 토질과 이어서 귀국 후 근무에 도움이 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토질분야를 부전공으로 선택하여 혼자 공부하였기 때문에 「토질 및 기초」 기술사를 취득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연속적으로 기술사를 취득하게 된 배경에는 다소 슬픈 사연이 있었다. 기술고시(토목분야)에 1등으로 합격하여 당시 관례에 따라 가장 먼저 희망부서에 보임되어야 함에도 합격 동기생 4명 중 가장 늦게, 그것도 1년 이상이나 늦게 발령을 받는 과정에서 많은 비애를 느꼈다.
*다행히 성백전 선배께서 당시 국립건설시험소장이시던 윤상옥 선배께 추천하여 주시어 건설부로 발령받게 되어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입게 되었다.
또한 서기관 승진과정에서도 무척 힘들었다. 서기관 승진 후 스스로 생각하기를 ‘사무관 발령, 서기관 승진이 그렇게 힘들었는데 앞으로 국장 승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린 결론은 ‘기술직으로서 실력은 있다’라는 명분을 갖추기로 했고 그 방법으로써 객관성이 인증되는 기술사 자격을 많이 취득하여 증명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기술사 자격시험이 1년에 3회씩 있고 분야별로 1년에 20~40명씩 배출되고 있으나 당시에는 1년에 1회, 분야별 합격자수도 4~5명에 불과하였다. 1980년대 초 기술사 3관왕은 거의 필자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당시 기술사 합격자 수를 극히 제한한 것은 기득권자들의 좁은 소견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생각되며 이를 타파하신 분이 현재 (주) 도화엔지니어링의 곽영필 회장이셨다. 기술사를 많이 배출해야 기술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는 폭 넓은 식견을 가지시고 상하수도 분야 기술사 시험 출제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상하수도 분야부터 기술사 배출 인원을 크게 늘림으로써 다른 분야에서도 따라오게 유도하셨기 때문이다.
네 번째 기술사는 약 20년이 지난 2003년 「도로 및 공항」 기술사였다. 2002년 인천공항철도주식회사 사장직을 맡고 있던 중에 자존심 상한 일이 있어서 그만 두었는데 그 후 후회가 되었다. ‘좀 참을 걸' 하는 후회였다. 정신건강상 후회하느니 보다 후회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보람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건설부 후배 故 박찬범씨가 당시 인기가 높은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자격취득을 적극 권유하면서 시험 준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서적도 갖다 주어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를 취득하게 되었다.
다섯 번째 기술사는 2003년 현대엔지니어링(주) 고문으로 있을 때 회사에서 「수자원개발」 기술사 자격을 취득하면 회사에 도움이 되겠다고 하고 필자 스스로도 그동안 물 분야에서 일한 것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 도전하여 취득하게 되었다. 기술사 자격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느낀 바와 기술사 제도 운영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① 기술자라면 되도록 젊은 나이에 기술사 자격 취득을 시도해 보도록 권유하고 싶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기술사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해당분야에 대한 기술적인 큰 윤곽이 잡히게 되고 여기에 실무 경험을 더하게 되면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기술 습득 속도가 빨라지고 폭도 넓어지게 된다. 즉, 기술자들이 기술수준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이라는 것이다.
② 국내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한 신규 수요가 점차 줄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진출 확대가 불가피하고, 해외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기술력 제고를 위해서는 기술사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된다.
*얼마 전 과거 건설부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 동료 몇 분과 대화를 나눈 과정에서 강길부 국회 상임위원장께서 우리나라 건설 분야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오직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 뿐이며, 앞으로는 단순한 건설 분야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엔지니어링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하시어 필자도 전적으로 동감하였다.
③ 과거에는 정부가 설계용역사업을 발주함에 있어 기술사에 대한 우대가 있어서 회사나 기술자 본인이 기술사 자격취득에 대한 열성이 높았으나 최근에 와서 우대조치를 거의 없애버려 기술사 자격취득에 대한 동기부여가 없어지고 말았고 따라서 열심히 공부하는 풍조도 크게 감소하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다.
우리나라 건설 분야의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감안할 때 정부는 나라 전체의 기술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설정해야 하고, 이의 달성을 위해 기술자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유도하여야 하며, 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써 정부에서 설계용역 발주 시 기술사에 대한 우대조치를 적정 수준으로 다시 회복시켜 기술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해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수 기술 인력에 대한 우대 없이, 아무나 해도 된다는 식의 평준화 시책으로는 기술수준 향상이 이루어 질 수 없으며 또한 좋은 성과품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정부시책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크다고 본다.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부이사장으로서 근무당시 경부고속철도는 국내 기술진이 설계한 내용에 따라 서울~대전 구간을 우선 시공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고속철도 경험이 있는 프랑스 기술진에 의한 설계 검증 결과 부분적인 설게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 공사가 일부 중단(주로 교량 구간)되어 언론으로부터 비판과 냉대를 받고, 국민들의 우려도 큰 상황이었다.
공사기간이 아닌 동절기에 설계보완을 끝내고, 이듬해 해빙기부터 본격적으로 공사를 재개하기 위해 겨울철 3개월 동안 사무실에서 야전침대를 놓고 밤을 보냈는데 냉기에 노출된 목 부위에 디스크가 발생하여 한 쪽 팔이 저리고 가늘어지는 증상이 심화되었다. 병원 검사 결과 당장 입원해야 하고 또한 장기간 입원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고, 집사람도 울면서 입원을 애원해 결국 공단 부이사장 취임 1년 반여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경부고속철도가 초기의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성공적으로 완공되어 현재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또한 관련 선진 기술개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대한건설진흥회 발간 ‘국토교통인의 향기’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