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 안전관리 강화, 더 구체적으로는 건설사고 사망자 줄이기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관계기관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 ‘건설기술진흥법’ 등 여러 법규와 규정, 지침 등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2022년 1월에는 이해 관계자들의 적잖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망사고 등 건설 재해 발생시 사업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됐다.
건설 현장 재해와 관련한 각종 분석자료가 발표되는 등 사고를 줄이기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설사고 사망자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건설사고를 유발하는 원인과 사고를 일으키는 주체는 누구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건설 현장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필 필요가 있다. 먼저 건설 현장의 근로 여건부터 떠올려 보자, 대부분의 건설 현장은 아침 7시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출근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늦어도 아침 6시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이처럼 서둘러 현장에 나온 근로자들은 10분 남짓한 안전교육과 구호 제창 후 현장에 투입된다.
오후 4시~5시 사이에 작업이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바쁜 현장은 야간이나 철야 작업도 해야 한다. 여름에는 뙤약볕, 겨울에는 영하의 기온 등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데다 소음과 분진은 건설근로자가 견뎌야 하는 숙명과도 같다. 추락의 위험을 안고 있는 고소작업,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는 각종 중장비, 촉박한 공사 일정으로 인한 작업반장의 독촉 등은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표적 요소들이다.
이처럼 건설 현장의 환경은 다른 산업현장과는 현저히 다르다. 건설사고를 줄이려면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1:29:300’의 법칙으로 유명한 하인리히는 재해와 사고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위험한 행동과 상태’라고 분석한 바 있다. 재해의 88%는 인적요인(위험한 행동), 10%는 물리적 요인(위험한 상태), 2%는 불가항력적 요인에서 각각 비롯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다.
하인리히가 대부분의 사고는 근로자의 불안전한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본 반면 우리의 ‘산업안전보건법’, ‘건설기술진흥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은 안전관리 계획, 보호구 지급, 근로자 교육 및 위험성 평가 등 사고 예방을 위한 사업주와 관리자의 의무를 주로 규정하고 있다. 사고 발생 시 관리자나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여러 곳에서 규정하고 있으나 근로자는 ‘안전관리의 객체’로 여겨지며 안전과 관련하여 어떤 책임을 지는지 명확히 언급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게 있다. 바로 근로자를 안전과 정책 및 대책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인식할 필요성이다. 건설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소득 증대와 고용 안정 등 근로자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개선이 이뤄지면 우리가 그토록 강조하는 ‘사고 줄이기’는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근로자를 안전의 주체로 인식하고 그들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해본다. 첫째는 건설근로자의 ‘소득향상’이다. 지금과 같은 저임금, 일용직 또는 지속성 없는 고용은 저소득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그로 인한 삶의 질 저하, 자산 축적의 어려움 등은 근로자를 불안정한 미래에 노출되게 만드는 근본 요인이다. 이처럼 기본적인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근로자에게 ‘안전’만을 요구하고 강조하는 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따라서 국가는 건설근로자의 적정 노무비가 확보되도록 제도화하고 발주자와 건설업체는 이를 준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금처럼 노무비를 공사비에 포함하여 산정하는 방식으로는 근로자에 대한 적정 노무비 확보는 어렵다. 사업주는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사업 기간 단축을 현장 관리자에게 요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줄어드는 공사 기간 만큼 사고의 위험성은 커지는 반면 투입되는 노무비는 줄어든다. 사업주는 이렇게 절감되는 공사비가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공사비 절감을 위한 현장 운영 방안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여 근로자의 소득을 적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둘째는 ‘고용 안정’이다. 철새처럼 이 현장 저 현장을 옮겨 다니는 환경에서 ‘안전’이라는 단어는 근로자에게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투입되는 근로자의 숫자만 산정하여 공사비를 산출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일용직 또는 필요한 인원만 단기 채용하는 관행은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건설 현장의 관행화된 고용 방식은 원도급자가 근로자를 직접 채용하지 않고 하도급, 재하도급, 불법하도급 등이 가능하도록 조장한다. 이 과정에서 하도급 및 재하도급자가 공사비의 일부를 착취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무비를 일정 부분 여유를 두어 산정함으로써 건설업체가 직접, 그리고 안정적으로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건설업체를 선정할 때 최저가 낙찰제를 지양하고 적정 숙련공 및 근로자 보유 현황 등을 평가하는 것도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유도하는 효과가 클 것이다.
고용 안정이 이뤄지면 기업체는 동절기, 혹서기 등 휴지 기간에 기능교육과 안전교육을 실시하여 숙련된 기술자를 양성하고 안전사고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건설근로자의 소득향상과 고용 안정은 젊은 근로자의 유입을 유도함으로써 노령화 및 외국인 근로자 증가 등으로 인한 안전사고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세 번째는 ‘근로 여건 개선’이다. 많은 건설 현장의 관행으로 굳어진 이른 시간부터의 작업은 근로자의 만성적인 피로, 가족 및 지인들과 동떨어진 생활 리듬 등을 초래하고 직업의 만족도도 떨어트린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건설 현장의 근무는 아침 7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보다 일찍 자질구레한 정리부터 시작하는 현장도 드물지 않다.
산업화 이전 전력 시설이 없거나 부족했던 시절, 또는 농경사회 시절 해 뜨면 일을 시작하던 관습의 영향으로 보아 넘기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안전과 직결되는 근로자의 건강을 위해서도 일찍 작업하는 관행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생활 리듬을 가족 및 지인들과 같게 만들어 직업의 만족도와 삶의 질을 함께 높이기 위해서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곳곳에 적치돼 있는 자재 정리, 규정에 맞는 안전 시설물 설치, 안전 보호구 착용, 장비 운행 시 안전조치 등도 근로 여건 개선 차원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할 내용들이다. 근로자를 ‘객체’로 여기는 인식에서 출발한 안전 정책과 대책은 효과를 담보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근로자를 안전 정책과 활동에 보다 주체적으로 참여시킬 때 정책의 효과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건설사고 사망자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각종 제도 연구나 도입 못지않게 근로자의 소득 증대와 고용 안정이 중요함을 새롭게 인식하고 더 안전한 건설 현장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