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건설신문 유경열 기자] 터널 안이 깜깜하고 어두운 곳이라 남들이 모를 까 봐 그랬나? 그동안 터널공사 현장에서 온갖 수법을 동원, 공사비를 빼먹는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올 2월부터 9월 말까지 7개월 동안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터널이 있는 고속도로·철도 등 전국 64개 주요 공사현장을 대상으로 부패실태를 점검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권익위에 따르면 건설업체들이 터널공사를 수행하면서 공사자재(락볼트)를 설계량보다 적게 시공하거나, 설계상 비싼 공법 대신 값싼 공법으로 시공 한 후 공사비차액을 편취하거나, 비싼 전자뇌관 수량을 부풀려 공사비를 과다청구 하는 등 수법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뿐이 아니다. 락볼트(rock bolt) 등을 설계대로 시공하지 않은 과정에 세금계산서·거래명세서·송장 등을 위·변조한 사실도 드러났다. 한마디로 터널공사를 하면서 공사비를 빼먹기 위해 못된 짓은 다했다는 것이다.
총 9개 공구현장에서 약 140억원의 공사비를 과다 청구한 사실이 들통 났다. 문제현장은 ▲울산포항 복선전철 ○○공구 ▲울산포항 고속도로 ○○공구 ▲성남여주 복선전철 ○○공구 ▲원주강릉 복선철도 ○○공구 등이다. 공사비 환수와 함께 관련자 처벌 등 후속조치를 위해 수사 및 감사기관에 사건이 이첩됐다.
락볼트는 갱도를 지지하기 위해 암반 내에 구멍을 뚫어 꽂아 넣는 중요한 공사자재다. 터널안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락볼트다. 건설업체들이 락볼트가 이 같이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뒤는 어떻게 되던 일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먹고 보자는 식의 ‘막장 비리’다.
터널안전사고는 그 어느 사고보다 사고현장 접근성 등 모든 것이 제한적이어서 충격은 물론 피해가 크다. 부실하게 시공한 결과는 ‘강 건너 불 보듯’ 뻔 하 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시공업체들이 잘 알고 있다. 국민세금이 이처럼 몰상식한 건설업자들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도 화가 나는데 이렇게 국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것에 입맛이 개운치 않다.
건설업계는 줄곧 ‘공사제값 주고 제값받기’를 외치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공사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공사비를 빼먹으면 누가, 아니 어디 가서 ‘공사제값 달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겠는가! 누가 봐도 염치없고 설득력도 없다. 부정한 방법을 동원, 배를 채우다 결국 다 토해내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건설업계가 일감도 없고, 공사를 해도 수익이 없는 등 여러 가지로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런 방식으로 공사자재를 빼먹고, 공법을 속이고, 비싼 전자뇌관 수량을 부풀려 공사비를 과다청구 하는 등 수법으로 공사비를 편취해서는 곤란하다. “다들 그런 방법을 동원, 공사비를 빼먹는데, 재수 없어 걸렸지” 하면 더욱더 위험하다.
공사안전은 회사 운명을 좌우할 만큼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공사품질 역시 안전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모두는 안전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눈에 두드러지게 보인다. 하루아침에 안녕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친 것은 결국 화(禍)를 부른다.